요즘 기독교 얘기가 많은데 사실 일단 유신론을 갖지 않은 사람은 살 가치가 없다.

어디서 본 말이지만 이런 격언이 있었다. '자신이 지금 무언가를 위해 죽을 수 있을만 한 것이 없다면 살아있을 필요도 없다.' 이 보다 더 부드러운 표현이었는지는 몰라도 비슷한 의미였다.

구원이나 혹은 생활의 필요에 의해서 종교를 갖는다는 의미보다 과학적으로 그리고 실재적으로 신의 존재가 필요하다. 그리고 효율성과 절대신이란 의미를 놓고 봤을때 유일신 신앙이 옳다는 나는 생각한다. 지금 존재하는 유일신 기반의 3대종교 유대교, 기독교(카톨릭도 포함), 이슬람교를 믿지 않는 자들은 살 가치도 없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불가지론의 수행방법을 가지고 있다던가 그의 준하는 방법으로 인생을 살려고 하지 않는 자들은 절대적으로 죽어 마땅하다. 왜냐하면 존재할 필요가 없으니까...그들은 우연의 산물일 뿐이며 단순한 목적없는 단순한 사고일 뿐 만물의 영장이라 불리울 만한 가치가 없다. 또한 결과적으로 이러한 자들은 오만하며 겸손하지 못하다. 이것은 성급한 판단이 아니다. 자신보다 고차원적인 존재를 생각하지 않는데 어찌 겸손 할 것 인가.......
공자가 원양이란 사람에게 말한길 '너는 어려서는 겸손하지 못했고 커서는 선행을 쌓지도 않았으며 늙어서는 죽지도 않고 있으니 인생의 도둑이 아니고 무엇이냐!' 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들은 모두 원양이다. 인생의 도둑이란 결국 똥싸는 기계란 것이다.

신의 존재에 대한 탐구는 열역학 제1법칙으로 알수  있다. 이 법칙은 에너지 보존의 법칙으로 질량보존의 법칙과도 통한다. '어떠한 에너지가 사용되어도 그 에너지는 다른 형태로 변화할 뿐 사라지거나 감소하지 않는다.' 라는 법칙이다. 우선 나는 지금 생각하고 스스로 존재한다고 느끼고 있다. 또한 생각 역시 에너지라고 할 수 있는데 나의 그런 존재감과 이 생각들은 내가 죽어 썩어도 다른 형태로 변화 할 뿐 사라지니는 않을 것이라 유추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넥서스(전자회로란 의미이다. 아시모프의 단편에 등장)로 변화 할 것이고 그렇다면 나와 같은 수많은 넥서스가 존재할 장소가 사후세계이며 이러한 넥서스와 세상을 관리할 슈퍼바이저(신이라고 볼 수 있다.)가 필요하다는 가설이 나온다. 순전히 나의 생각이지만 스스로는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 슈퍼바이저가 통일된 방향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의견조정이 필요없는 단 한명의 존재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다른 의견들이 발생 할 수 있지만 나 역시 다른 생각을 가져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냥 이것이 좋다고 느꼈다. 다신론으로 생각해서 능률적이려면 여러명의 슈퍼바이저가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나 범신론처럼 그 곳 역시 어떤 법칙들에 의해 지배받을 뿐 그 질서 자체가 신이다란 생각을 갖을 수 있지만 난 질서는 신의 도구 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 질서를 만든 존재는 어느 곳에 반드시 존재할 것이고 우린 그 영향을 피할수 없다는 것이다 . 질서가 왜 도구일 뿐이냐 하면 질서는 그 자체일 뿐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질서는 스스로 변화하지 못 한다. 불변하기 때문에 법칙인 것이고 질서다. 그런 것이 인간 보다 상위의 존재라고는 인정할 수 없다.

by PureJunk | 2008/07/09 20:57 | 트랙백 | 덧글(0)

미래?

미래...이제 졸업하는 친구가 공부 열심히 하라는군. 취직 해야 할거 아니냐 면서 이제 대학생이 고등학교 졸업생의 80%까지 되는 상황에서 머하고 살까나..요즘 집값도 올르고 연봉 아무리 3000되어 봐야 1억 모으는데 몇십년도 더걸리는 세상에 자고 나면 몇억씩 버는 사람들 이런건 상관없다. 열심히 산다는 의미가 뭐냐? 삶에 대한투쟁 그깟거 그냥 허우적거림 아니냐. 연봉 올리고 차 배기량 올리고 집 좀 넓어지고 좀 더 이쁜 마누라 얻는게 좋은 인생이냐? 부모는 자식으로 인해 근심이 생기고 농부는 소로 인해 근심이 생긴다는데 그것으로 더 많은 것을 소유하면 뭐하나 더 행복해지나? 행복 그까이꺼 미쳐돌아가는 세상 무시하고 살아볼려고 자기만족으로 내놓은 처세술 아닌가? 열심히 산다는게 뭐냐? 남한테 미안하지 않게 사는거? 미안 안하려해도 그렇수가 없다 이미 태어난 것 자체가 폐인 걸? 그럼 무엇으로 인해 사는가 그런걸 알면 내가 이런말 안늘어 놓지. 진리가 있다. 그래도 나는 천성이 회의적이라 잘 믿지를 못한다. 부정한 짐승이라? 짐승은 생각도 없고 영혼도 없다는 식으로 매도하면서 부정한 짐승이 어떻게 있겠냐?  오로지 부정한 짐승이란 인간밖에는 없는거다. 발굽이 2개라 부정하다? 무슨 죄를 지었길래? 발굽 2개가 죄냐.인간만이 매일 죄를 짓는다. 나는 오늘도 수십을 죽이고 수십을 간음하며 남의 것을 탐낸다. 나는 부정하다. 그래서 나는 괴롭다. 내가 살아가면서 얼마나 더 타락해야하는 거냐? 남을 이롭게하는 방법은 이롭게 죽는것 밖에는 없다. 그래서 나는 의롭게 죽는 미래를 원한다.

by PureJunk | 2006/11/22 13:52 | Romancer Says It | 트랙백 | 덧글(0)

미쳐가는 거지

아 진짜 인생 이렇게 살면 안되는데 겜에 온라인 겜에 빠져서 그거에 시간과 돈 낭비나 하고 앉았고 인생에 도움되는 거나 열심히 할라고 하진 않고...사람들은 나보고 염치가 있으라는데 그런건 어디서 파는거냐. 후~훗
진짜 인생 제대로 사는게 어떤거냐...누가 좀 알려줬으면 좋겠구만 다세포소녀 영화화 된다는데 쪼까 거시기한 만화지만나름대로 재밌던데 추천 1방 날려주지 ㅎㅎ

by PureJunk | 2006/06/22 00:20 | 트랙백 | 덧글(1)

나란 사람은 정말....

사람들이 나르 보헤미안이라고 부르더군 맨날 알수없는 소리만하고 사람은 안 만나는 것 같은데 사라기지 일수고 연락은 안되니 신비감이 조성되긴 하나봐
시험기간인데 공부는 안하고 쓸데없는 짓만 하고 공부는 안하는게 아니라 집중을 아예할 수가 없던데 벌써 시험은 망쳐가고 있고 소생의 길은 이미 멀어졌도다.
단지 내가 진짜 보헤미안처럼 예술적 자질이라도 조금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바람 뿐
난 배짱이가 되고 싶은 개미로 태어나 나태한 여름을 보내고 겨울이 오면 고독과 고통에 앓다가 나를 거둬줄 부지런한 개미를 찾아가야 할테지만 그들은 날 경멸하게 될거 같은 예감이 든다.
아 난 아마 버려지고 말거다. 어쨌든 시험기간인데 원하던 목표 이른바 나의 발전적인 것이 아닌 유희적 갈망에 따른 욕구를 충족시켰지만 또 그보다 상위의 욕구가 밀려오는 것을 봤을때 역시 욕망은 마르지않는 샘 같은 것이라 느꼈다.

by PureJunk | 2006/04/26 00:22 | 트랙백 | 덧글(0)

호오~~싸이에 주소를 남겼더니..

소대장님이 오셨더군요.
싸이는 워낙안하느지라...지금은 머리가 더 자랐지요.
69년도의 등장했던 히피들을 닮아갑니다. Love&Peace 하하
이제 다시 대학생이 됬지만 뭘해야할지 몰라서 그래도 항상 낙관적으로 살고 있지요 너무 낙관적이라 그렇지 뭐 취미생활도 있겠다 남는 시간은 가끔 공부하려고 한다던가 건설적으로 시간을 활용하려 해보지만 의자에 앉기만 하면 졸리는 건 어쩔수가 없습니다.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생활이 편해졌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생활하는것 자체에는 큰 변화가 없고 더욱이 퇴보라 할 수있는 것도 있고 발전이라 할수 있는 것도 있겠지요. 60~70년대 살았던 사람들이 지금과 그때를 비교해 보면 지금은 물론 편하겠지만 최대요구치가 항상 상승함에 따라 꼭 지금이 살기 편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요. 선진국이라해도 요즘 대두되는 사이코패스형 범죄라든가 예전 세르비아에서 벌어진 학살과 콩고 여러곳에서 일어나는 분쟁들 문명이 발달했다 하더라도 개개인의 영성에는 큰 차이가 없겠지요. 고로 문명이 발달한다고 해서 인류가 진보하는 건 아니라 그겁니다. 단지 그것은 물질의 진보에 가깝다는 거지 총체적인 인류의 발전이라고 보기는 힘들지요. 심심해서 막써지는데로 써 봅니다.
이건 일종에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거나 무언가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많은 블로그가 아니라. 일종에 넷상에서 이루어진 화장실 같은거지요. 카타르시스를 추구하기 위해 가상에서 발언을 한달가 부끄러운점도 있습니다. 허나 난 남들 보다 사색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쇼펜하우어의 문장론을 읽고 내가 의외의 천재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됬습니다. 전 생각보다 열등감이 많은 사람이지만 내가 생각한 것들이 비록 지적 선구자들에 의해서 논리적질서를 갖춘 진리로 이미 등장해 있다 하더라도 저 역시 그것에 도달했다는 뜻이란 내가 그들 만큼 똑똑하기에 도달했을 수다 있다는 결론이죠.  그러한 사상이랄까 그런것들이 무수히 내 머릿속에 있습니다. 가끔식 심심하면 그런 것들을 남기는 장소로 이곳을 택하게 됬습니다만 게으른것만은 어쩔수가 없네요. 그것이 내 인생에 가장 큰 실수이며 죄악인거 같습니다. 언젠가는 숨쉬는 것도 귀찮아 질 것 같습니다.
나머지는 다음에..

by PureJunk | 2006/03/26 23:23 | 트랙백 | 덧글(0)

보시오~~~그대가 무엇을 보든 그 것은 아주.....

아주 오랜만에 글을 쓴다. 뭐 이것은 할 일이 없기 때문에 랄까...
많은 사람들이 아침형인간이란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무런 활력 없이 밤을 지새우다 잠이 오면 잠이들고 오후의 태양을 보며 일어나 아 오늘도 날은 밝았건만 나는 어찌해야하나 생각하는 절망형인간이다.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건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난 그런 낙오한 사람들 가운데서는 상대적으로 매우 축복받은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내가 그런 사람들 중 하나란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더욱 낙담하게 된다.
그 누구든지 그 무엇과 비교하려 하지 마라 그 자신의 가치는 오직 그 자신만이 갖는 것이며 이는 증명이 불가능하다. 그대가 그 자신보다 상위의 존재를 의지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내가 만약 슈바이처 박사와 같고 아인슈타인같은 자라 할지라도 그런 사람들은 하등의 가치를 인식하지 못한다. 물론 사회속에서는 그런자들의 가치를 메기겠지만 그것은 다순한 자들의 무지에서 비롯된 인식이며 예를 들어 지구의 환경이 위태로울때 살아남을 100명을 뽑으라면 그들은 유전적으로 우수한 자들이나 도덕적 지식적으로 빼어난 존재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강력한 힘을 갖은 자들일 것이다. 누가 그런 자들을 가치있다고 하겠는가? 또한 인식의 문제에 대한 불가의 해답은 내가 하는것이 세상이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구를 고무로 덮고 싶다면 내가 고무 신발을 신으면 된다란 이야기다. 이해하기 어려울수도 있는 문제지만... 

지금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내가 주장하는 벌레 이론의 도입부를 장식한 것이다. 현재 생각하는 상식적으로 볼때 바퀴벌레나 모기와 같은 생물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혐오하는 생물로서 해충이라 불린다. 바퀴벌레를 애완동물로 키우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말이다. 만약 어떤 바퀴벌레가 인간들이 개발하는 모든 구충제에 대한 면역을 완성했다고 치자 그 바퀴는 바퀴들의 구원자와 같은 존재로 그들의 세상의 영웅이 될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보기에는 그 바퀴가 가치있는 존재라 볼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허면 인간들이 절대적 기준없어 그들의 사회속에서 학식이나 덕 재산 등으로 가치를 메긴다면 창조주가 볼때 그 것들은 가치있는 것이로 보이느냐 하는 문제이다. 창조주가 아니라 인간이외에 지성체가 본다면 말이다. 결론적으로 인간의 가치는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가치란 2명이 인간이 있다고 했을때 '난 가치가 있어 너도 가치 있다고 해줄게' 하며 한 약속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의 소위 인간의 존엄성일 수도 있으며 약속에 의한 허구의 산물인 것이다. 그러므로 실질적으로 인간은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현재는 이러한 가치의 등급에 대한 무수한 데이타와 그 보편화됨으로 인해 객관적이라 할 수도 있고 실재하지는 않지만 실재하는 듯한 상황을 조성해 내었지만 여전히 그 실상을 파헤치면 당신의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러므로 결국 자신의 가치는 오직 그 자신이 보는 세상에 있다는 것이다. 그 자신이 가치라는 의미를 두지 않는다면 가치가 없는 것이고 가치를 부여한다면 가치가 있는것이라는 이야기다. 누구에 의한 인증이나 자타공인이라는 말은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자칭이라고 자신만이 인정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절망적 상황에서도 스스로 존재할 수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가 성경에도 나온다 '의신칭의' 라고 의롭다함이라 불린다는 말로 의롭다함 곧 선하다는 뜻은 지고의 존재인 하나님만이 붙일수 있다는 뜻이다.   

by PureJunk | 2006/02/02 21:12 | Romancer Says It | 트랙백 | 덧글(0)

요즘 근황

전에는 Semi-폐인 이면 지금은 Full-폐인이랄까..후~~~
아르바이트도 접고 놀고있는지 근 1개월이 되어가는 지금 하루에 애니메이션 50화 가까이 보는 짓을 하고 있다
유레카 세븐, 카페타, 충사, 지옥소녀, 블러드 플러스, 허니와 클로버, 현대시각문화연구회, IGPX 등을 봤다. 요 며칠 동안 말이다. 와우도 얼마전에 1주일 계정으로 다시해보고 컴퓨터는 24시간 켜져있다. 기상 시간은 12나 13시쯤 취침은 4~5시 쯤 나도 내가 썪어가는 것을 느끼는 정도다 환기 안되는 방에서 하루종일 있으니 머리가 다 아프다. 왜 이렇게 요즘 히키코모리들 처럼 두문불출도 몇일 째이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밖에 안가는 정도...이렇가다 말라죽지 않을까 싶다. 주변의 친우들 조차도 연락도 뜸하고 얼마 없는 친구들이지만 말이다. 위에 열거한 만화들중 카페타가 1순위 충사와 유레카 세븐은 재미있지만 조금 다른 장르이다보니 어쨌든 유레카세븐이 좀더 흡인력 있는 편이다. 충사는 옴니버스라 보니 조금 재미없을 수도 조금 철학적인 주제라고 말한다기 보다 그뜻은 나도 모르기에 얼핏 숙고하게 되는 어쨌든 그런 종류인데 은철 같이 길게 끌면 좋은데 1개의 단락이 끝나면 다음 단락과 아무 연관이 없기 때문에 별로 흡인력이 없달가 그래서 2순위이다. 어쨌든 카페타는 레이싱 장르라 해야 할까 그런 재미도 있고 가족적 감동도 있달까? 난 매우 재미있었다. 더구나 나는 현실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주제로 삼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미래물은 약간 현대물보다는 덜 땡기는 경향도 있고...그래도 카페타는 재미있다.
요즘에는 재미있는 게임들도 없고 게임에만 인생을 거는거 같아 그렇지만 사실 정신적으로는 그리 우울하달까 절망적인 기분이 들지는 않지만 어째 모든 일이 무료하달까...남의 상상력에 기생해 생존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나의 상상력은 말라가고 더구나 꿈도 안꾼다. 늦게 일어나면 해는 중천이고 컴퓨터 좀 만지면 벌써 3시 쯤 되다보니 후~~하고 한 숨이 절로 나온다. 변화는 내가 시작해야 하는데 말라버린 샘 처럼 의지는 솟아오르지 않는다. 하여가처럼 이런들 저런들 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이런 연명은 이제는 그만 해야한다는 생각이다.
나의 절망 이론에 의하면 해탈의 경지와 종교적일 수도 초현실적이나 형이상학적 인 체험은 무시하고 현실에서 느낄 수 있는 감각으론는 절때 쾌락의 절정에 다다를 수 없다는 것이 지론이다. 스토아학파처럼 자족하라는 소린 엿이나 먹고 에피쿠로스처럼 현상에 만족하는 것은 도 닦으란 얘기니 적어도 지금 머리나 가슴으로 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럼 모든 가능성을 총동원하더라도 나는 100%만족에 이를 수 없다. 그렇다면 ?%까지 다다르나가 논제인제 98%나 2% 똑같은 미완이기 때문에 허우적거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 나의 절망이론이다. 가능성의 이야기지만 측정가능한 것들 즉 형이하학적인 것으로 쾌락의 수치를 정한다면 나는 가능성으로도 나이 40이 넘기전까지 10%도 못채울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죽을때까지 돈을 모은다 하더라도 페라리의 범퍼나 살 수있을까 하는 문제이다. 워렌버펫은 코카콜라가 좋아서 지금은 코카콜라의 대주주 이지만 나는 그정도의 욕망과 자질을 보유하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 것은 나의 절망적인 천성 일 수 도 있지만 당연한거다. 로또로 대박나서 집짓는다는 망상과 동급이라는 것이다. 이런 생산성 없는 바보같은 이야기만 하지만 뭐 이렇게 배출함으로써 카타르시스란 걸 느낄 수 있다면 그것도 만족 아니겠는가? 달리고 달려서 붙잡히지 않던가 달려도 언젠가 지쳐 멈추면 붙잡힌다는 것을 알고 뛰지 않는 것과의 차이는 무엇이겠는가? 대해에서 물에 빠지지 않기 위해 허우적거리는 것과 언젠가 지쳐 빠질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허우적되지 않는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생각해보라

by PureJunk | 2006/01/02 01:02 | Romancer Says It | 트랙백 | 덧글(2)

책?

핸드폰과 나약 저주받을 것으로 짐작되는 손으로 찍은 사진이라 민망할 다름이다. 잘 보이지 않는 이책은 한글명 '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 이다
다름 아닌 유명한 Tim Burton의 것이다. 의외의 도서를  나의 친우 K모씨를 통해 접촉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책은 매우 얇고 하드커버로서 소장하기에 매우 좋다. 더욱의 여러 삽화와 팀버튼의 초상도 스케치가 되어 있다. 뒤표지에 말이다. 또한 금방 읽을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속독에 길들여지어 있다면
정말 차한잔 마실 시간 만큼만 당신을 투자하면 된다. 그러나 그런 것에 대한 만족도 치고는 8000원이란 가격은 실망스러울지도 모른다. 허나 나는 이 책을 통해 변화 되어진 것은 없다고 생각하나 누군가 필요할 지도 모르기에 소개한다.

by PureJunk | 2005/12/22 00:54 | ITEMs? | 트랙백 | 덧글(0)

Lucas에게 속았다


이 게임이 보이시는가 11월23일날 Namco사에서
Soul Calibur 3가 발매되었다 나는 어느 정도의 자금이 있었고 그 것이 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C모씨의 불안정한 베타파의 발산을 억제하기 위한 그의 자위책 덕분에 내가 짐을 메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한마디로 PS2안사서 돈 굳었단 얘기다. 그러나 나는Lucasarts사의 사이트를 방문하였던 적이 있었다.  
나는 문득 이게임이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거금 57000원을 주고 일본판 타이틀을 샀다. 그 결과 흔히 유행하는 '낚였다'  란 느낌이었다.
엉성한 조작감, 감상적이지 못한 충격음, 변화 없는 패턴의 공략법(나만이 그렇게 느끼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훌륭한지 못한 시각적 표현들 나는 실망했다. 또한 빈약한 촉감적 향수들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서 이것을 얻기 원한다면 끼꺼이 양보할 수도 있다. 그도 다시 누군가에게 이것을 건내어 줄 것이다. 그런 정도란 것이다.

by PureJunk | 2005/12/22 00:46 | ITEMs? | 트랙백 | 덧글(0)

최근 군을 갔다와서 남은 것이라고는

어언 군대를 갔다온지도 1년이 되어 갈려고 하고 있다. 20대가 꺽이려면 2K7.
얼마남지않은 한해와 그리고 또 한 해가 지나면 20대도 꺽인다. 그런 의미에서 2K5참으로 아쉬운 해이다. 그리고 2K6 아쉬워질 것 같은 해이다. 
언제나 거짓말쟁이로 다른 사람들에게 남는 것 처럼 내가 그들을 죽이기에 그들도 나를 죽인다.
내가 그들을 찾지 않음으로서 그들도 나를 잊게 되고 잊혀진 기억으로서 그들이 죽게 될때나 내가 죽을때 이미 그들 혹은 나는 가슴 속에서 사라진 뒤일 것이다.누구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죽은 것 아닌가?

요는 나는 문명에서 뒤쳐지고 더욱이 사회성이 희박한 결과로 흐릿한 존재로 남아있는 것이다. 더욱 쉽게 말하면 나는 술도 잘 못마시고 이야기도 잘 못하고 핸드폰도 없고 전화번호를 적는 메모지도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그래서 연락처를 잊어버리면 접촉이 끊어진다. 그럼 생대방이 이어가야 할텐데 나와 만난 사람들은 1차 이상의 시도를 잘하지 않아 끈어지게 된다는 이야기다. 참으로 아쉽다. 촉촉한 영성의 가르침이나 온정이 필요하다고 생각들은 안하시는가 마음이 피폐한 사람은 육체도 피폐하게 되는 것이다.

by PureJunk | 2005/12/22 00:36 | Romancer Says It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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